도쿄도미술관에서 로마전을 관람한 다음 우에노 공원 입구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으로 향했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기획전시로 큐비즘전이 시작한 시기였다. 상설전과 소기획전이 있었는데 상설전 티켓만 있으면 소기획전도 볼 수 있었다. 기획전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보기로 하고(?) 상설전을 보기로 했다.
인상적이었던 로댕 작품들. 실제 그의 작품인지 레플리카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알아보지 않았다가 더 맞음), 일본에 있는 서양 미술관에 로댕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게 뭔가 이질적이고 특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 로댕과 일본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일본에서 유럽으로 건너가서 배우로서 활약했던 하나코가 로댕과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은 유명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중 하나다. 미술관 건축물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이 갔는데 상설전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르 코르뷔지에와 미술관의 관계가 먼저 소개되어 있었다. 늘 이름으로만 익히 들었던 르 코르뷔지에 작품에 이렇게(?) 발을 들이게 되어서 놀라웠다.
상설전 안으로 들어오면 다들 사진으로 남기는 천장(?). 그의 작품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미술관을 성스럽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상설전 구경하러 출발. 이때는 몰랐다. 내가 상설전을 보느라 두 시간 동안 미술관 안에 있게 될 줄은.
미술관과 박물관의 상설전이란, 해당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물품을 대중에게 공개한 전시다. 따라서 어떤 작품을 가지고 있느냐가 곧 그 미술관의 위력을 보여주는데... 서양미술관에 발을 들인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 내가 일본에 있는 건지 유럽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소장하고 있는 품목들이 어마무시했기 때문이다.
*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은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상설전은 루카스 크라나흐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나 브뤼헬 형제의 작품부터 시작해서 국내에서도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으로 가득했다. 액자에 놓인 회화뿐 아니라 문을 열어서 전시하는 제단화도 있어서 전시관을 다 돌려면 최소 2시간은 소요해야 할 만큼 소장하고 있는 그림이 많을 뿐 아니라 그림 자체도 유명했다. 굉장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이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을 모은 게 20세기 일본인 사업가였던 점, 그리고 그 시기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겪던 시절과 겹친다는 점 때문이었다. 마냥 좋아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는 품목들은 열심히 즐겼다(?). 나름 미학도답게(?) 그림만 보고 몇 세기에 그려진 어느 나라 작품인지 맞춰보곤 했다. 10개 중 6~7개 정도 맞추는 확률이었다 ㅋㅋㅋㅋ 사진으로 찍은 것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었고 하나하나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또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한참을 14~16세기 사이에 빠져있다 보면 17~20세기가 다가온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진으로 남긴 작품. 소년 소녀가 어린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그림인데 아기새를 바라보는 두 아이의 표정이나 자세가 정말 그 나잇대만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함을 그리고 있어서 이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정확하게는, 그리스 신화 속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둘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 소녀였던 시절의 한 풍경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18~19세기의 작품들 중에는 모네와 마네, 그리고 그 외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한 코너가 인상파 그림으로 가득할 정도였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작품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인상파 전시를 지나 내려오면 조각 전시관이 있다. 대부분 로댕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여기에 도착하고 나서야 왜 로댕 작품이 그렇게 많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인상적이었던 라파엘 전파 그림. 2019년에 아베노 하루카스 전시에서 만났던 로세티의 작품을 이렇게 실물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위의 후지타 쓰구하루의 작품은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음에도 사진으로 남겼는데, 내가 그림을 보자마자 설명을 보지도 않고 '아 이거 백색 피부와 얼굴을 보니 후지타 쓰구하루 작품이네'하고 맞췄기 때문이다(ㅋㅋㅋㅋ). 새삼, 작가의 화풍이란 게 얼마나 일률적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후지타 쓰구하루의 작품 너머 벽으로 가면 흔히 우리가 아는 모던아트의 세계로 넘어온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호안 미로, 큐비즘의 대표주자인 피카소를 시작해 미술관을 디자인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르 코르뷔지에 작품은 해당 미술관에 기증된 작품이라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다.
소기획전
현재 진행 중인 소기획전은 부그로와 밀레이를 중심으로 하는 아카데미 출신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19세기는 사진기술과 여러 기술혁신으로 인해 "회화"라는 장르가 위협받음과 동시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때, 아카데미에서 인정받지 못한 화가들이 스스로 실패작 전시를 열었던 사건을 시작으로 우리가 아는 다양한 근현대 미술 사조(야수파, 인상파 등등)가 등장했다.
이 전시는 그런 격변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고전"과 "전통"을 중시했던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놓은, 또 다른 19세기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딱 이 두 공간만을 이용한 전시였는데 벽면에는 설명과 더불어 작품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대표적으로 소개된 작가가 영국의 밀레이와 프랑스의 부그로였다.
✔︎ 존 밀레이 (John Everette Millais, 1829-1896): 영국 출신 화가로 라파엘 전파 창시자 중 하나이다. 햄릿의 오필리아를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란?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 라파엘로(Rafaello)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미술 사조 중 하나로 '라파엘로 이전의 시대-고전과 전통, 데생을 중시하는 화풍-으로 돌아가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로세티와 밀레이가 대표적이며 주로 신화나 로망스(=소설)를 모티브로 한 고전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작품을 그렸다.
✔︎ 아돌프 부그로 (William Adolphe Bouguereau, 1825-1905): 프랑스 출신 화가로 프랑스 아카데미 화풍의 대표주자이다. 주로 소녀나 미인을 중심으로 목가적인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많은 레퍼런스로 활용되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모티브로 한 "지옥에서의 단테와 버질(Dante and Virgil)"이 그의 대표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부그로가 제자인 피에르의 딸 가브리엘 코트를 그린 초상화다.
작품에 관한 설명을 다시 찾아보면서 인터넷에 올라온 이미지들을 봤는데, 보정이 들어가서 그런지 피부가 훨씬 밝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하지만 실제 작품은 조금 더 톤이 다운되어 있고 사진처럼 조명이 비춘 것 같다.
보자마자 '뮤즈!'를 외쳤던, 부그로의 "음악"이라는 작품이다. 유채화지만 색감부터 시작해 구도까지, 굉장히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었다.
이외에도 이렇게 고전주의를 유지하면서도 근현대에 그려진 작품이라는 게 돋보이는 그림들도 있었다.
https://www.wikiart.org/en/william-adolphe-bouguereau
이외에도 시선을 끄는 유채화들이 정말 많았다. 내년 2월까지 진행된다고 하니 도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꼭 한번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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