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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검은 집 黒い家』 -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어둠의 집

과거의 흔적/후기

by mizu-umi 2020. 3. 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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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4일에 쓴 리뷰. 리뷰가 날로갈수록 업그레이드되는느낌;;)

 

"마음이 없어요"

 

- 메구미의 스승이 사치코의 시를 읽고 난 후 신지에게 하는 말

 

접하기는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접한 이 검은집. 영화를 봤을 때에는 '검은'이란 단어에 맞게 우울하고 칙칙하단 느낌을 받았지만 별 감흥은 얻지 못했다. 영화평을 일찌기 보고서 봐서 그런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봤던 공포영화 중에서 참 긴장감 없고 뭔가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든데다 이렇게 기억나는 게 거의 없는 영화는 이 검은집이 처음일지도^^;

 

소설은 영화를 봤을 때부터 한번 보고싶다, 라는 생각을 햇었는데 나보다 앞서 읽은 친구들이 '엄청 무서워!'하고 표현했던 게 확 끌려서 이번에 한국 가서 바로 구입, 필리핀으로 귀국 후 야행관람차를 다 읽고 차근히 읽기 시작해서 저번주 토요일즘에서야 다 읽었다.  친구들이 말했던, 잔인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서늘한 소설이라는 그 말이 다 읽고 나서야 실감이 나더라.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하던 형이 자신 때문에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는 신지는 겉은 번듯해보여도 속은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있다. 곤충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생명보험이라는 일을 하게 된 것이 마치 그 속죄를 하려는 듯 보일 정도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지난 어린시절의 어둠을 불러 일으킨다. 자살하면 돈을 받을 수 있느냐는 한 여자의 목소리와 한 아이의 죽음, 그리고 그 아버지의 매일같은 방문. 신지는 이 '검은 집'의 식구들을 만남으로써 꽁꽁 감추고 살았던 자신의 어둠을 차근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책을 덮고 나서 상당히 많은 생각에 빠졌다. 신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여자가 신지의 손에 '정당방위'라는 이름으로 죽은 후 오랜만에 메구미와 신지가 나누던 통화에서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작가가 가장 쓰고 싶어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작가는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부류의 인간들을, 보험금에 집착하는 가즈야의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얼마나 잔인하고 치밀하며 위험적인지까지 낱낱이 보여준다. 범죄심리학과의 가나이시라는 인물을 통해 사이코패스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고 이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악(惡)'이라 말하는 한편 신지의 연인이자 아동 심리학과를 전공한 메구미를 통해서는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 '선천적으로 타고난 악(惡)은 없다'고 한다.

 

우리 나라 표지보다 더 소설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되는 일본 표지.

 

검은집은 신지라는 인물을 통해서 사이코패스의 무서운 집착과 간사함을 표현해낼 뿐 아니라 메구미라는 인물을 통해 사이코패스던 정상인이던간에 '인명(人命)의 가치'라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전부터 사이코패스에 워낙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였기에 메구미와 가나이시의 대립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도 천성으로 타고나는 살의와 악이 있다고 생각했다. 종교적으로도 어려서부터 '죄'와 그 결과에 대해 배웠지만 이것과는 조금 다른, 타고나는 '살인자'가 있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일어난 다양한 연쇄살인이나 하정우 주연의 추적자를 봤을 때도 그랬다. 사이코패스들은 마음이 없어 남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들에게는 보통 정상인들과는 다른 극형이 처해져야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신지가 자신을 죽이려 달려든 사치코를 '정당방위'란 이름으로 죽이고 그 후에 병원에서 '바퀴벌레를 죽인 기분'이란 생각을 하는 모습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사이코패스가 뇌에 하나 뭐가 부족하게 태어났다는 게 과학적으로 증거된 사실이라면, 그들은 그저 일종의 사회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닐까? 싶었다. 메구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악은 없다'면서 오히려 진정한 악은 자신의 부모님같은 염세적이며 이기적인 부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 신지는 사치코를 죽은 자신이 했던 '하찮은 목숨 하나 끝냈다'하는 그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 된다.

 

솔직히 메구미가 말하는 환경의 영향이란 것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해주지는 못하겠다.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안 좋은 환경에서 자라 나쁜 놈만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말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자란다 하더라도 '마음'이 없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선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유명 미국드라마인 덱스터에서도 덱스터의 사이코패시를 먼저 알아챈 양부가 일반 사람은 죽이지 못하도록 단련시키지만 결국 그도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죽여가면서 살아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이코패스이면 죽어도 싸다는 생각을 가진다. 우리나라에선 유영철이나 강호순만 해도 그렇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가지게 되는 그 '죽어도 괜찮은, 하찮은 놈들'이라는 그 마인드가 얼마나 섬뜩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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