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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시리즈 『나는 신이다』를 보면서...

감상/시리즈

by mizu-umi 2023. 3. 2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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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사람들이 봤고 또 적지 않은 갑론을박이 오고 가는 만큼, 어떤 후기를 남기기보다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보고자 한다. 나는 신이다와 관련이 있을 수도, 어쩌면 없을 수도 있는 글이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모태신앙이다. 아니, '이었다'고 말하는 게 더 맞겠다. 모태신앙으로 20여 년간 교회를 다니다가 2017년 이후로 듬성듬성 가면서, 지금은 교회와 거의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 여기서 '거의'라는 부사를 굳이 사용한 건, 교회를 벗어난 삶이 내 인생에서 5년도 채 되지 않았으며 기독교 혹은 신과 관련된 화제는 지나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신이다를 본 것도 단순 흥미보다는 그런 맥락에서였다.

 

 


 

 

 나는 모태신앙인 만큼 어려서부터 숱한 교리 교육에 더불어 사이비에 대한 경각심을 기르는 교육을 받았다. 예수님의 교리가 아닌 것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경계하도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나도 모르게 사이비적인 무언가에 휘둘리고 있었다.

 

 한 번은 대규모 기독교인 청소년 캠프에서 사이비와 이단을 연구하는 탁 소장님의 강연을 접했다. 이때 탁소장님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매우 충격적이었고, 사이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에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이단과 사이비 단체를 파헤치는 블로그를 발견했다. 해당 캠프에는, 당시 온라인에서 소녀시대의 Gee영상을 백워드매스킹해서 교회에서 강의하던 사람도 강연자로 참여했었다. 탁소장님의 사이비에 대한 이야기와 해당 강연자가 설파하는 새로운 교리는 세상과 종교, 신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던 시기의 내게 있어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온갖 음모론과 매체에 대한 불신, 종교에 대한 의심에 붙들렸다. 엄마한테 그 블로그에서 발견한 글을 열성적으로 이야기했다가 '그런 거 제발 그만봐'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또 한 번은, 이제 막 접목되기 시작한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접한 사이비 단체의 포교 영상에 푹 빠졌었다. 대표적으로 기억하는 곳은 'ㅎㄴㄴ의 교회'라는 곳으로, 고퀄리티 성경 공부 영상을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교리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특히 나를 매료되게 했던 건 '어머니 하나님'이란 개념이었는데, 왜 하나님은 늘 아버지라고만 불러야 하는지에 의구심이 들고 있던 청소년이었던 만큼 쉽게 현혹되고 말았다.

 

 다행히, 이것들은 한 때의 열병처럼 지나갔다. 이때, 엄마가 너무 그런 것에 빠지지 말고 신앙에 집중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았을지도. 물론 지금은 신앙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보통 사이비와 이단의 차이를 '사람을 믿느냐, 아니냐'로 나눈다. 'ㅎㄴㄴ의 교회'에 앞서 언급한 에피소드들은 나름 사이비로 분류되지 않은 사람들이 주장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내가 사이비적 경험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신앙보다 사람을 보았고 그것을 맹신했기 때문이다. Telephone과 July 4th를 좋아하면서도 레이디가가와 케이티페리를 사탄의 하수인으로 생각하며 경계하고, 가요를 듣는 친구들을 내심 저러다 사탄의 하수인이 되는 건 아닌가 생각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받고 있었다. 요즘 유튜브에 올라오는 정보를 맹신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위에 서술한 에피소드들은 사이비와 관련된 에피소드라면, 정식 교회로 인정받는 곳에서도 숱한 사건·사고를 경험했다. 목사의 불륜, 교회 건물이 경매로 넘어간 일, 예배 도중에 벌어진 싸움, 미투 사건으로 뒤집어진 교회, 떠나가는 교인들 등등(*). 사이비네 아니네를 떠나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내 안에는 교회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내가 교회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교회 안팎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 한때의 나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면서도 교회에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었다. 자신도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 그 모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러던 2016년, 강남에서 벌어진 여성 혐오범죄를 계기로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내 안에서 혼재되어 있던 것들이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2019년까지는 나름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있었다. 식전 기도를 하고 누군가 종교를 물으면 기독교인이라고 답하고. 하지만 2020년 이후로는 더 이상 기독교인으로 정체화하지 않기 시작했다. 자신이 믿던 종교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보며, 교회에 남기보다 그곳을 벗어나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말하며 인정하지 않고 품지도 않으려는 교리를 더 이상 따를 수 없었다.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이간질하고 품지를 못 한다면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목회자를 제명시키고 이단으로 취급하는 등, 내게 있어 '서로 사랑하라'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한국 교회는 사이비와 이단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교회에 진절머리가 났다.

 

 앞서 언급했듯, 아직 내 삶의 근저에는 Christian으로서의 정체성이 자리잡고 있다. 인생의 모토로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되새기며 여전히 찬양을 흥얼거리거나 듣기도 한다. 어쩌면 먼훗날,  다시 교회를 나갈지도 모른다. 매우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오려면 지금의 교회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지금의 내게 있어 교회는 본교회와 사이비나 이단이 분리되지 못하고 있는 혼돈의 공간이니 말이다.

 

 그저 바람은, 자신이 믿었던 것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영혼이 치유되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증언해 준 피해자들을 응원해주고 그들이 사회로 돌아올 때 누구보다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가해자들은 본인들이 한 짓에 대해 응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1. 20살 이후에는 사이비에 현혹되는 일은 없었으나, 집에 찾아온 'ㅎㄴㄴ의 교회'인가 'ㅇㅎㅇ의 증인' 단체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성경과 교리로 배틀을 뜬 적이 있었다. 사이비와는 말도 섞지 말라는데 굳이 말을 섞어서 싸우기까지 한 그때의 나를 돌아서 보면, 정말 바보 같다.

2. 언급한 사건은 같은 교회에서 벌어진 건 아니고 내가 다녔던 교회마다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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