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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소년심판』

감상/시리즈

by mizu-umi 2022. 3. 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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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스포

 

소식을 접하고 공개되기를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다. 드라마를 볼 때는 보통 재생 속도를 1.25에서 1.5배속으로 맞춘다. 매체를 보는 건 좋아하지만 시리즈물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싶지 않아서다.  [소년심판]의 경우, 배속 설정을 완전히 잊어버려서 1배속으로 봤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를 보면서 보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지난 주말 동안 [소년심판]은 지금까지 본 한국 드라마 베스트 10 중 하나가 되었다.

 


 

 

김혜수 배우가 분한 심은석 판사는 디케(*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의 현신 같았다. 디케를 묘사한 작품들을 보면 대개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데 칼은 법집행의 준엄함을, 저울은 공평성을 상징한다.

 

심판 사는 이성의 저울로 법을 어기는 사람은 모두 죄인으로 취급하며 냉철한 칼로 그들의 죄에 맞는 벌을 내린다. 어떤 상황에 놓여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뚫고 나가는 모습이 참 멋졌다.

 

 

한편 심 판사와는 반대 위치에 서 있는 차태주 판사는 인간이 갖는 모든 선한 마음과 인정을 형상화해놓은 것 같았다. 소년범을 혐오하는 심 판사와는 달리 아이들을 우선 믿어주고 품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오래 봐온 아이들을 너무 믿다 보니 심 판사가 담당인 사건에도 일일이 끼어드는 모습은 너무 갑갑했다.

 

[인정]으로 죄를 감싸는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큰 시련이 일어났을 때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기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차 판사가 어떻게 변할까 싶었다. 차 판사는 내 생각과 달리 자신이 오판한 상황에는 깨닫고 뉘우치면서도 아이들을 계속 믿어준다. 신념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잘못 생각한 부분은 고치고 변해나가는 인물이었다.

 

 

염혜란 배우가 분한 오선자 센터장과 이성민 배우가 분한 강원중 판사 에피소드도 참 인상 깊었다. 두 사람 모두 사명감을 가지고 소년범들의 갱생을 위해 열심히 일해왔지만 정작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자녀들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 부모였다. 서로 다른 에피소드로 소개되지만 이야기하려는 바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보면서 사명과 주변과의 관계를 잘 조율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이정은 배우가 분한 나근희 판사는 짧게 등장하지만 임팩트가 강한 인물이었다. 강부장보다 훨씬 날카롭고 무서운 부장인 데다 심 판사의 과거와 가장 깊게 연루되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집단성폭행사건을 통해서 과거에 잘못 지은 매듭을 현재의 자신이 다시 풀어서 바로 짓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 잡으려는 모습을 보여준 게 인상 깊었다.

 


 

[소년심판]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이었다. 어떤 이야기이든 등장인물에게는 말로 굳이 표현하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소년심판]은 두 중심축인 심은석 판사와 차태주 판사에게 존재하는 미스터리를 대놓고 드러내기보다 꽁꽁 감춘다. 대신,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두 인물이 목표로 하는 바, 혹은 신념을 꾸준히 보여줌으로써 미스터리가 풀릴 때 왜 그 인물이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납득시킨다.

 

 

또 소년범에 대해 다루는 작품인 만큼 인물의 말을 통해서나 특정 에피소드를 통해서 소년범들이 처한 문제나 국가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또 우리가 모르는 문제가 있는지 보여주려고 노력한 점도 좋았다. 각기 다른 네 개의 시선이 있지만 그 시선 모두 소년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한다는 것. 인물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또렷하게 전해졌다.

 

 


1화에 나오는 소년범(한예은, 백성우)들이 망상장애나 조현병이 있는 건 병이 있더라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위함인 것인지 아니면 소년들이 범죄를 일으키는 건 정신적인 결함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했다. 다행히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전자였다.

 

다음 에피소드였던 유리의 이야기에서는 보호자 없는 청소년에게 일종의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 같아서 조금 불편했다. 유리뿐 아니라 그 외의 대부분의 소년범들의 인적사항에 부모가 없거나 이혼, 가정 폭력을 당한 이력이 있어서 불행한 과거를 가진 인물들은 결국 범죄를 저지른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가려는 인물과 그러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고 산 인물도 등장시켜서 대조적으로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회복센터 에피소드에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학대는 있어서도 안되고 아이들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가정 폭력으로 쉼터에 피난 온 게 아닌 이상 본인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법적 처분을 받고 센터에 들어가 있는 입장일 것이다. 그런 애들이 센터장에게 찬밥 더운밥을 가리고 있길래 재생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폭력이나 인신매매에는 무조건 피해자가 생긴다.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입장이라면 자신이 먹으려는 밥이 식은 밥인 걸 따졌을까.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었다.

 

극 중에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대사가 나온다. 마을 하나가 나서야 하는 만큼 한 아이의 성장에 사회 구성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절대 혼자 자랄 수 없다. 우리가 나서서 지키고 잘 자라나게 노력해야 한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고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붙잡아서 말려야 하는 책임이 있다.

 

[소년심판]을 기점으로 청소년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면 좋겠다. 나는 예술이 갖는 힘을 믿는다. 메시지를 가진 드라마는 단순 유흥에서 그치지 않고 분명 변화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청소년에 대해서 사회가 함께 관심을 갖고 바꿔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심 판사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주옥같았지만 강부장에게 했던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쳐선 안된다’는 말이 특히 좋았다. 목적이 뭐가 됐건 간에 잘못된 수단을 사용한다면 옳지 못 하다는 것. 삶의 모토 중 하나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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