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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공녀 (2018)

감상/영화

by mizu-umi 2021. 9. 1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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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부터 참 궁금하면서도 보는 걸 미루고 있던 영화였는데, 최근에 김국희 배우님의 필모를 훑게 되면서 소공녀에도 출연하셨단 사실을 알았다. 역시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마음먹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미소(이솜)는 난방조차 잘 되지 않는 값싼 집에서 5년을 살고 있다. 도우미로써 하루 일하면 받는 돈은 4만 5천 원. 그날 번 돈은 담배를 사거나 위스키를 마시면서 소비하는 게 미소의 낙이다. 하지만 한 해가 바뀌면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담배 값과 위스키 값이 오르고 덩달아 월세마저 오르게 되면서 미소는 갈림길에 놓인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것이냐, 집을 포기할 것이냐. 그는 후자를 선택했고 그렇게 떠돌이 생활이 시작된다.

 

우선, 미소는 과거에 함께 밴드를 하던 멤버들을 하나둘씩 찾아간다. 가장 먼저 찾은 문영(강진아)은 큰 기업에 취직해 점심 시간에 짬을 내어 비타민을 맞아가며 생활하고 있다. 미소는 문영에게 혹시나 잠시 동안 함께 머무를 수는 없는지 묻는데, 그 말을 들은 문영의 표정이 좋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거절을 당한 미소는 다음 친구를 찾아간다.

 

두 번째로 찾아간 현정(김국희)은 고시 준비 중인 남편과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미소와 오랜만에 만난 현정은 누구보다 미소를 반기며 집으로 들이는데, 집안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현정은 미소의 방문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남편과 실랑이를 벌인다. 현정은 가족들과는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미소를 보면 활짝 웃어 보인다. 그날 밤, 밴드를 하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리에 누운 두 사람. 여기서 미소가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란 게 밝혀진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울다가 잠이든 현정을 보며 미소는 무언가 다짐한다. 이른 아침, 미소는 어지럽혀져 있던 현정의 집을 정리하고 요리가 너무 어렵다는 친구를 위해 반찬을 만든 다음 잠든 현정을 두고 조용히 떠난다.

 

세 번째로 찾아간 대용(이성욱)의 집은 굉장히 어지러워져 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대용의 집에는 신부가 없었고 무슨 이유에선지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자고 말을 건네는 미소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미소는 어지럽혀진 대용의 집을 청소하고 아침밥을 차려주는데, 전날 우는 소리를 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얼굴로 대용이 출근한다. 대용과는 허울 없는 사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나 남자 친구인 한솔(안재홍)의 걱정으로 어쩔 수 없이 대용의 집을 나오게 된다. 대용의 집을 나오기 전, 미소는 대용과 대화를 시도하려는데 특단의 조치(?)를 이용해 대용을 방에서 끌어낸다. 베란다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결혼 생활이 8개월 만에 끝나버린 대용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짓는다.

 

네 번째로 찾아간 록이(최덕문)네 집에는 갇혀버리고 만다. 나이 든 아들을 둔 로이의 부모는 아들이 장가를 갔으면 하는 마음에 어떻게든 미소를 집에 가두려고 하지만, 미소 또한 방법을 찾아내 집에서 탈출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가 정미(김재화)의 집은 지금까지 간 어떤 집보다도 넓고 좋다. 정미는 이제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미소 앞에서는 웃어보이면서도 아이를 돌보는 게 많이 힘들어 보인다. 집이 넓고 적적하니 머물러도 좋다고 말한 덕분에 미소는 한동안 정미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편하게 쉴 곳을 마련하면서 행복하게 된 한때도 잠시, 미소는 한솔이 사우디 아라비아로 2년간 출장을 간다는 소식과 함께 정미의 집에서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쫓겨나게 된다. 다시 한번 살 곳을 잃은 미소는 24시간 운영되는 카페에서 하루를 보내고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며 생활한다. 가사 도우미 일도 여전히 하고 있는데, 최근에 일을 시작한 호스티스 민지의 집에서 평소라면 일하는 시간에 얼굴 보기 어려운 민지를 맞닥뜨린다. 민지는 임신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스스로가 너무 헤프지 않냐 말하고 미소는 헤픈게 어떻냐며 민지를 위로한다.

 

그렇게, 겨울이 깊어간다.

 


 

생각이 많아질 영화란 사실을 알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생각에 가슴이 시렸다. 미소의 삶, 미소의 친구들의 삶. 집이 없어도 있어도 누구 하나 맘 편히 살고 있지 않다.

 

유독 가슴에 남은 장면은 미소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정미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오게 되는 부분이었다.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사는 정미가 남편 앞에서 미소가 눈치 없이 하는 행동들에 화를 내던 모습. 정미가 미소에게 화를 내며 하던 말들이 영화가 끝나서도 계속 생각났다. 좋게 말하면 넉살 좋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 없는 미소의 행동에 화를 내고 있지만 정말 아무 걱정 없이 내던진 말이 아니라는 게 느껴져서 였다. 누군가에게는 정미의 말이 가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게는 여전히 미소를 잘 알고 걱정하는 정미의 마음이 들렸다.

 

가슴이 가장 아팠던 건 미소와 한솔이 헤어지는 장면이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한솔과 그래도 그에게 꿈을 잃지 말라며 연습장을 선물하는 미소. 출발한 차를 멈춰 세우고 한달음에 달려와 미소와 입맞춤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연애를 하고 있어서일까. 사랑하지만 사랑을 하기 위한 여건이 충족되지 않으니 헤어질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누군가에게 미소의 삶은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지 모른다. 정말 저렇게 사는 젊은 사람이 있을리가? 하지만, 실제로 미소처럼 살아가는 2030세대가 적지 않다는 사실과 그보다 앞서 홈리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현실에서 그렇게 동떨어지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지난 6월부터 8월에 이사하기까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살 집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집구하기의 어려움을 깨달은 지금, 소공녀의 이야기가 유독 와닿는다. 얼마 전 막을 내린 공연에서 한 등장인물이 읊던 투르게네프 작품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이런 밤, 지붕 아래 앉아 있는 사람.

따뜻한 보금 자리를 가진 이는 행복하다.

 

신이여, 쉴 곳 없는 이 방랑자들을 굽어보소서.”


김국희 배우님의 현정이가 너무 리얼해서(ㅋㅋ) 웃으면서도 참 씁쓸했다. 정말 서민의 삶(?)을 너무 잘 연기하는 분...;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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