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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동유럽] 09. 프라하에서 빈으로 - 나홀로 여행 (1)

여행/동유럽 in 2019

by mizu-umi 2021. 2. 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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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가기 전까지 머무를 곳도 아는 사람도 있다보니 혼자서 여행을 하게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언니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았던 탓에 정신 없이 버스를 예매하고 나서, 혼자서 오스트리아를 여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 흥분됐다.

 

숙소를 잡을 때 1박 2일로 잡는 바람에 빈에서 하루밖에 지내지 못하게 되어 프라하에서 가능한 출발이 빠른 버스를 잡았다. 아침 10시 50분 출발이라 적어도 20분 전까지는 가야 내가 앉고 싶은 곳에 앉을 수 있었다.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니 프라하의 아침 해가 조금씩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전날 저녁, 아침에 먹을거리를 사두지 않아서 근처에 있는 슈퍼를 찾아다녔다. 라면을 샀던 가게를 다시 한번 가려고 하니, 구글맵에 소개된 것과는 다르게 24시간 마트가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아 헤맸다. 트램을 타는 곳 가까이에 슈퍼가 하나 있었고 음료수와 빵을 골랐다. 계속 돈을 아끼고 있어서 먹고 싶은 게 생겨도 살 수가 없어서 슬펐다.

 


슈퍼 앞에서 우버를 기다리는 듯한 중년 한국인분들의 무리를 봤다. 뭔가 도움이 필요한 건가 싶었는데 알아서들 잘하시는 것 같아서(ㅋㅋㅋ) 내가 살 것들만 사고 숙소로 향했다.

 


동네 슈퍼에서 산 빵을 레인지에 데워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살 때까지만 해도 딱딱한 빵이었는데 먹을 때는 부드럽고 달콤했다. 아침을 먹고서 마지막으로 짐 점검을 했다. 짐을 다 챙기고 나니 정말 프라하를 떠난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아쉬움과 그다음 행선지로 가야 한다는 긴장감이 교차했다. 이날의 패션을 사진으로 여러 장 남기고, 두고 나가는 것이 없는지 다시금 확인한 후 1층으로 내려갔다. 

 

 

첫날에는 많이 찍지 못했던 숙소의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슈퍼를 갈 때보다 훨씬 밝아진 하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트램 티켓을 구매하지 않은 상황이라 근처 역에 가서 살까 했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페이스북으로 가입한 여행 그룹이 생각나 그곳에 검색해보니 신문을 파는 슈퍼면 어디든지 구할 수 있다는 답변을 보았다. 아침에 갔던 슈퍼에 다시 들러 티켓에 관해 물으니 이게 웬걸, 30분짜리는 없고 90분인가부터 시작한다고. 별수 없이 버스 정류장까지 걷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의미심장했던 포스터

 

짐과 함께 20여 분을 걷는 동안 하루 전날 계획했던 버스 타기 전 점심을 챙기기 위해서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 다행히 근처에 KFC가 있어서 치킨 랩을 샀다. 점심을 사고 부지런히 이동하는데 버스 정류장 위치가 지도상에 나온 것과 내가 가야 하는 곳이 달라서 한참 헤매다가 겨우겨우 찾아냈다.

 

겨우 찾은 플로렌스 정류장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확인하다가 자리를 옮기면서 스타벅스로 가려는 길에 웬 독일인(자칭)이 자기가 집에 가야 하는데 짐을 잃어버렸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여행객에게 돈을 묻는 사람은 믿기가 어려운 상태라 미안하다 하고 빌려주지 않았다.  나도 돈이 많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혹시나 정말 돈이 없어서 못 가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든 집에 잘 돌아갔기를 바란다….

 

플릭스버스 전광판
스타벅스에서 바라본 바깥풍경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키려고 보니 돈이 애매하게 남아있었다. 코루나가 조금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커피 한잔도 시키기가 어려웠다. 점원이 아메리카노 한잔이 65코루나라고 해서 그러면 시킬 수 있겠다고 했는데 웬걸, 점원이 잘못 보고 말한 거였다. 주문받던 점원이 미안했는지 그냥 그 돈만 받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었다.


승차 시간이 되어서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베를린으로 가는 버스가 먼저 와서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개중에 작별 인사를 하는 세 사람이 보였다. 배웅하는 사람은 체코 사람, 베를린으로 가는 버스에 타려는 사람들은 인도나 아랍계로 보였다. 서로 너무 행복하게 인사를 하고 있어서 지켜보던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멀미 대비하기


프라하를 떠나는 시간의 아쉬움에 버스로 지나가는 풍경을 영상으로 남겼다. 전날 팁 투어를 했던 곳부터 시작해서 또 다른 프라하의 모습들이 눈 안에 들어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낯선 곳이었는데 하루 만에 나에게 있어 굉장히 소중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두번째 정류장 근처


내가 버스를 탄 플로렌스 정류장을 떠나서 도착한 두번째 정류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탔다. 이때 신기하게도 전날 팁투어를 하며 만났던 가족이 버스를 타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팁투어 때도 얌전하더니 버스 안에서도 얌전했다. 버스 주행 시간이 5시간 가까이 되다 보니 멀미가 나지 않게 잘 먹고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장시간 비행도 힘들지만, 장시간 버스도 참 힘들다. 빈에 도착하고 나서 처음으로 그 가족에게 말을 걸었다. 전날 함께 했던 사람을 여기서 또 만나게 되니 그분들도 참 신기해하셨다. 프라하에 놀러 온 것이라 본거지는 프라하고 빈은 잠시 온 거라 다시 프라하로 돌아가신다고 했다.

 


 

빈에 도착해서 헤매며 찍은 사진


버스가 빈에 도착하고 나서는 어디서 지하철을 타야 하는지 몰라서 한참을 헤맸다. 투어리스트 센터에 다시금 가서 길을 물으니 버스 정류장 건너편에 지하철이 있다고 했다. 건널 길은 육교뿐인데 육교로 가려면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를 수밖에 없어서, 차가 안 보이는 동안 후다닥 뛰어서 길을 건넜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Edberg역

 

여기까지만 난관이면 좋은데 바로 다음 난관은 역사에서 벌어졌다. 지하철 티켓을 사려고 보니 잔돈이 없는 것. 안내 센터에다가 잔돈 없음을 어필하니 하니 여기는 잔돈을 주는 곳이 아니니 저쪽 끝에 있는 어딘가에서 티켓을 사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짐을 끌고 다시금 반대편으로 갔는데 어디로 가라 한건지 잘 모르겠어서 또 헤맸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티켓을 파는 것으로 보이는 가게가 보여서 그곳에 들어가 하루 내내 쓸 수 있는 8유로짜리 티켓을 샀다.

 

8유로 학생용 데이패스


숙소가 있는 곳은 내가 지하철을 탄 곳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날 가려고 한 곳들이 숙소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들이라 최대한 서둘렀다. 구글맵에 숙소를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미리 체크 해두어서 역에 도착하고 숙소를 빠르게 찾아냈다. 

 

숙소 대문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곳

 

숙소에 체크인을 하면서 보증금을 내고 이불을 받았다. 이번에 예약한 숙소는 호스텔이어서 여러 사람과 함께 방을 쓰게 됐다. 다행히 1층으로 배속된 방에 들어가 침대 시트를 깔았다. 나보다 먼저 방을 쓰고 있던 한 남자분이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참고로, 나만 한국인이었다.

 


짐을 풀고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밖으로 나왔다. 쇤부른 궁전Schloss Schönbrunn과 미하엘 광장Michaelerplatz을 갈 계획이었다. 쇤부른 궁전을 가기 위해서 숙소 근처에 있는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로 가는 동안 길거리에 놓여진 하얀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을 보았다. SNS에서나 보던 광경을 실제로 보니 신기해서 발을 서둘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잠시동안 멈춰서서 연주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흔한 야외 피아노 연주임에도 유럽 여행을 하면서 듣게 되니 색다르게 다가왔다. 

 


 

쇤부른성 역
성으로 가는 길


지하철을 타고 쇤부른 역에 도착해서 궁전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궁전으로 가는 길목이 참 예뻤다. 비가 오고 난 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렀고, 벌거벗은 나무들 위로 비추는 햇빛은 따뜻한 주황색이었다. 날은 추웠지만 가슴은 포근했다.

 

 

궁전 안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났단 것을 깨닫고 아쉬운 마음으로 겉만 보고 오잔 생각을 했다. 궁전 대문 앞에서는 티켓을 가지고 있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줄 알고 한참을 망설였는데 이게 웬걸 그냥 들어가도 됐다. 궁의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바깥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파노라마샷으로 찍은 쇤부른성 본관

 

프라하 성이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성이라는 별명이 있듯, 유럽의 아름다운 성 중 하나라는 이름에 걸맞게 참 매력적인 성이었다. 내가 아는 시씨와 프란츠는 이런 성에서 산 것이구나 싶었다. 노이슈반스타인은 동화 나라의 성이라면, 쉔부른은 판타지 소설에 나올법한 성이었다.

 

나무 위에 걸린 햇빛

 


담배술음식은 안됩니다. 입마개한 강아지는 됩니다.


쇤부른 궁전을 뒤로하고 그 다음 행선지인 미하엘 광장으로 향했다. 지하철 안에서 환승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역이 눈에 들어왔다. 슈테판플라츠Stephanplatz라는, 동명의 슈테판 대성당이 있는 곳이었다. 슈테판플라츠에 가까워질수록 미하엘 광장을 갈지 여기서 내릴지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슈테판플라츠역에서 내렸다.

 

슈테판 대성당

 

출구를 나오자마자 웅장한 슈테판 대성당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오른쪽 부분을 보수공사 중이었는데 갤*시 스마트폰의 광고판이 붙어 있어서 우스웠다. 슈테판플라츠 주변을 구글링해보니 주변에 다양한 명소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동유럽 여행 중, 이 슈테판플라츠 안에서 가장 많은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고딕양식의 웅장함을 뽐내는 내부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누군가
렐리프

 


 

베드로 성당


슈테판 대성당을 쭉 돌아보고 주변에 있는 성당 두 곳과 기념탑들을 둘러보았다. 성당 두 곳 중 하나였던 베드로 성당 내부는 굉장히 화려하고 반짝반짝거렸다. 처음 들어갔던 슈테판 대성당보다 더 많은 사진을 남긴 곳이었다.

 

페스트 기념탑

 

기념탑들도 하나하나 찾아서 구경했는데, 페스트를 기념하는 탑은 굉장히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생생하게 그 역사적 암흑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미하엘플라츠
돔 내부


슈테판플라츠를 벗어나 미하엘 광장으로 향했다. 미하엘 광장은 슈테판플라츠에서 지하철을 굳이 타지 않아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멋진 장소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광장platz이기보다 대형 호텔의 입구에 있는 로터리 같은 느낌이었다. 시간이 시간이라 미하엘 광장의 입구를 지나면 보이는 가게들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입구 쪽 길을 곧장 걸어서 나온 곳은 호프부르크Hofburg라는 궁전의 내부였다. 해가 다 진 후라 사람도 없고 불도 없었다. 조금 더 걸어서 궁전을 지나가 나온 곳에는 국회의사당처럼 보이는 두 개의 큰 건물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지금 와서 검색해보니 들어가서 오른쪽이 정부기관, 왼쪽이 박물관이었다. 

 

 

오른쪽에 위치한 정부기관 앞에는 오스트리아의 페미니스트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이 공개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주요 인물들의 행보와 업적들을 보여주는 전시 하나만으로도 내 빈 여행이 완성된 것만 같았다.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근처에 있는 공원에 들어가 벤치에 앉았다. 인적이 매우 드문, 가로등 불만 켜진 공간에 우두커니 있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에서 조명이 쏘여진 모습을 보면서, 유럽의 아름다운 건물들은 모두 조명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공원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문 닫을 시간이라고 알려줬다. 더 있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길거리에서 사먹은 부스트
마트에서 사먹은 모둠 과일

 

그 자리를 떠나서 다시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배가 고파서 길거리에서 파는 부스트를 사 먹었다. 배를 간단하게 채우고 슈테판플라츠로 돌아왔다. 일이 일어난 순서가 가물해서 슈테판플라츠로 돌아와 다음 날 아침에 간식으로 먹을 것들을 마트에서 샀다가 근처에 있는 오래된 시계를 발견한 것인지 시계를 보려다가 마트를 발견한 것인지 싶다. 

 

슈테판플라츠에 있던 앙커우어 인형시계

 

아무튼 프라하에서 천문시계를 본 경험이 좋았어서, 시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 그 주변을 계속 맴돌면서 기다리다가 구경했다. 더 고민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카페에서 시켜먹은 카페라떼와 치즈케이크
아이패드와 그때 사용하던 블루투스 키보드


숙소로 돌아가서 불필요한 짐을 두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 이렇게 여행기의 보완을 하듯, 카페에서도 여행기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마저도 여행이란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더 늦어지기 전 카페에서 나오니 하필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산을 두고 나왔는데 비가 내리다니;ㅅ; 어쩔 수 없이 한참 비를 맞으며 숙소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씻고 최대한 빨리 잠들었다.

 

정리하던 짐들 :)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숙소를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늘 동성만 이용하는 숙소에서 지냈던지라 혼성 숙소는 많이 낯설고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내 두려움과 별개로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은 날 친절하게 도와주었고 다들 각자 할일에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앞으로 저가의 호스텔을 이용할 때는 혼성 방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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