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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동유럽] 04. 동화나라의 성 - 퓌센 Füssen

여행/동유럽 in 2019

by mizu-umi 2021. 2. 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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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과 조금 다른 청소년기를 보냈다. 필리핀에서 학교를 다닌 것도 그렇지만 내가 좋아했던 '어떤것' 때문에 특히나 유별난 청소년기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 '어떤것'을 좋아하고 있다. 어떤 것이 무엇인지 자세한 건 비밀이지만 무대 관련 장르인데 여기서 2000년대 초반에 루트비히 2세의 삶에 대해서 환상적이게 다룬 작품이 있다. 그 작품을 통해 루트비히2세와 그의 주변 사람, 그리고 그가 완성하고 싶었던 이상의 나라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언젠가 꼭 한번즘은 가보고 싶은 장소였다. 꿈과 환상의 세계를 살아가던 왕과 미완성된 그의 꿈의 나라. 무책임하면서도 참 낭만적이지 않은가.

 


 

 

잘츠부르크에서 23시 차를 타고 뮌헨에 1시 즈음 도착했다. 뮌헨 중앙역에서 U반을 타고 언니네 집에 들어가서 잠이 든 게 1시 반에서 2시 사이였는데 언니가 퓌센은 평소보다 일찍 나가야 하므로 8시까지는 준비를 마쳐야 한다고 해서 많이 자지 못하고 일어났다. 출근하는 형부와 함께 아침을 먹고 나갈 채비를 마친 후 8시가 되자마자 출발했다. 아직 9시가 넘기 전이라 뮌헨 중앙역까지 가는 원웨이 티켓을 사야 하는 상황이었다.

 

언니가 일단 바이에른 티켓*으로 부딪혀 보자며 티켓판매기에서 바이에른 티켓을 사고 중앙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도 티켓 점검을 하러 차 안을 돌지 않았고 무사히 중앙역에 도착했다. 이날은 퓌센까지 동행할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분의 바이에른 티켓도 구매하려고 했으나 상대가 본인은 괜찮다고 답변을 해서 언니와 내 것만 샀다. 언니가 동행을 구한 것은 바이에른 티켓의 할인을 받기 위해서였는데 본인 건 안 사도 된다는 상대의 말에 나나 언니나 이 사람 뭔가 싶었다.

 

* 독일 바이에른 지방 전용 기차표

 


중앙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그것은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사는 일(!) 각자 마실 것을 사고서 퓌센으로 가는 플랫폼으로 향했다. 우선 동행인을 찾아야했다. 플랫폼 가장 앞 벤치에 동양인 남자분이 앉아 있길래 혹시 동행이시냐고 물으니 Sorry라는 답이 돌아왔다. 같은 동양인이지만 엄한 외국인에게 말을 걸어버린 우리는 뻘쭘한 기분으로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 안에 자리를 잡고 나서 언니는 다시 동행인을 찾으러 나갔고 나는 조용히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시간이 흐르고 언니가 동행인을 데리고 왔는데 이게 웬걸, 아까 우리가 잘못 인사한 사람도 함께였다. 일본인이고 퓌센까지 혼자 간다길래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고 언니가 말했다.

 

학생증 들고 함께 찍은 사진 🤣


상당히 영어를 잘하는 일본사람으로 이름은 나스(*)였다. 내가 일본에서 유학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일본어로 이야기했다. 나는 오사카에 살고 있다고 하니 본인은 교토에 살고 있다길래 나는 살기만 오사카 살지 학교는 교토라고 했다. 물론 교토 대학은 아니고 다른 곳이라고, D대학이라고 하니까 자기도 D대학 재학 중이라고 했다. 세상에나. 지구 반대편에 와서 같은 학교 사람을 만날 줄이야. 대학원생이고 K캠퍼스기는 했지만(**) 이런 일이 일본 안에서도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라 서로 놀라움을 감추질 못했다.

 

* 나스라는 일본 성임.

** 우리학교는 입학식을 하는 K캠퍼스, 문학부가 있는 I캠퍼스, 동아리 활동시설이 있는 S캠퍼스가 있다.

 


나는 나스 상과 주로 이야기를 하고 언니는 동행하게 된 최 군과 이야기를 나눴다. 최 군은 조만간 입대 예정이라 알바로 열심히 돈을 모아 유럽으로 두 달간 여행을 왔다고 말했다. 최 군이 바이에른을 사지 않은 이유는 미리 사놓은 기차용 프리패스 같은 게 있어서였다. 했던 대화 중 기억나는 것은 언니가 막내니까 이쁨받으며 컸겠네 라고 하니까 아닌데요 라고 한 것.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역시나, 형들하고 5살 이상 차이가 벌어졌다. 막내여도 늦둥이면 부모가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어화둥둥 내 새끼는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집에서만 가능한 얘기다. 최 군과 나는 격한 공감을 나누었다(*).

 

* 나도 우리집에서 늦둥이고 큰언니와 11살, 작은언니와 7살 차이난다.

 

좌: 슈방가우 정류장 / 우: 저 희끄무리한게 노이슈반슈타인성

 

 

퓌센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기 전, 최 군이 현금이 없다고 해서 은행에 들러 돈을 뽑으러 갔다. 바이에른 티켓을 가지고 있는 나나 언니, 나스상은 바로 버스에 올라 최 군이 버스 티켓을 사고 탈 동안 자리를 잡고 지켰다. 퓌센역에서 버스를 타고 노이슈반슈타인 성 근처로 가는 시간은 체감상 약 10분 정도였다. 날은 밝았고 햇빛을 받은 주변 풍경이 반짝거렸다. 버스가 멈춘 정류장 저 멀리 노이슈반슈타인이 보여왔다. 산 위에 지은 성이다 보니 굉장히 멀어 보였다. 

 

멀리서 보이는 노이슈반슈타인

 

호엔슈방가우

 

내가 먹은 것들

 

예약한 티켓을 사러 예매처로 올라가는 길 멀리로는 호엔슈방가우성이 보였다. 이번에는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노이슈반슈타인만 보고 나올 예정이었다. 나스상은 예약해 둔 티켓이 없어서 현장 예매를 하러 갔고 나와 언니는 미리 예매해둔 오디오 가이드 티켓을 수령했다. 입장하기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의 스탠딩 식당에서 요기를 채웠다. 나는 첫날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라들러 비어와 커리부스트를 주문했다. 배를 채우고 나서는 다 같이 성을 향해 올라갔다.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말들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다들 포기했다. 

이때는 몰랐다. 사람들이 왜 마차를 탔는지…

 

올라가는 길. 눈이 많이 녹았다.
좌: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성 / 우: 아래의 주거단지


생각보다 가파르고 긴 길이어서 다 올라가는 데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카메라와 가방, 코트 때문에 몸이 엄청 무거워서 땀을 뻘뻘 흘렸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괴로웠다.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화장실로 달려들어 볼일부터 봤다. 올라가는 길목에서도 충분히 예쁜 성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나니 더 아름다워 보였다. 몸이 진정되고 나니 산 공기가 산뜻하고 시원했다. 

 

가까이서 찍은 성의 외관
분명 이런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들어갔다....-_-;

 

땀을 식히며 성의 출구 근처에 있는 다리로 가는 입구 앞에서 시간을 기다렸다(성의 그림자가 지는 곳이어서 덥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막혀 있어도 넘어간다는 입구였으나 차마 그러고 싶진 않았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내부

 

13시 5분 입장이라 12시 50분쯤에 성 입구로 들어갔다. 미완성인 만큼 아직 공사 중인 곳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서 성 외관을 구경하고 나스상의 권유로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나스상이 단체여행 온 일본 분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그 분이 카메라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굉장히 열성적으로 찍어주셨다. 덕분에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사진이 나왔다.


최 군은 13시 티켓이어서 먼저 입장하고 나와 언니가 그 뒤를 이었다. 들어가 보니 최 군이 먼저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 가이드를 받는데 처음부터 일본어로 주려는 것을-일본인 단체관광객이 있어서 그런 것- 언니는 한국어로 받고 나는 영어로 받았다. 관광지에 와서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직접 조절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볼륨만 조절 가능하고 나머지는 동행하는 안내원이 통제하는 기계가 흘리는 순서대로 나왔다.

 

내부에 있는 카페(?) 같은 곳
시청각 자료실에서 볼 수 있는 영상

 

내부는 생각보다 굉장히 좁은 공간이 문을 통해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루트비히 한 사람만을 위한 연회장이다. 유지보수가 한창이라 공사 현장처럼 보였지만 오디오 가이드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한 사람만을 위한 연주가 진행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니 사뭇 다르게 보였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공간 자체가 한정적이라 가이드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고 내려가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마그넷을 샀다. 예쁜 디자인이 많아서 하나를 고르는데도 고민하느라 혼났다.

 

내려가는 길에 카페에도 들려보고 문밖으로 나가 성 안 난간에서 바깥을 구경하기도 했다. 시각 자료실도 있어서 잠시 구경하고 끝나는 대로 나와서 나스상에게 연락해보니 13시 20분에 입장한 나스상이 우리보다 먼저 밖에 나가 있었다. 성내부를 좀 더 구경하다가 세 사람 모두 여유롭게 출구로 향했다.

 

유일하게 촬영이 가능한 곳. 성의 주방(?)


성 근처의 자연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다가 적당한 시간에 하산했다. 내려가는 동안 각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일정을 공유했다. 나는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짝꿍과 통화했다. 짝꿍은 잠들기 직전이었고 졸린 목소리였다.

 

노이슈반슈타인 근처를 갈 때는 맨 뒷자리에 앉았으나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보니 이번에는 앞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해가 조금씩 저무는 풍경 속 노이슈반슈타인은 정말 아름다웠다.

 

2월 말의 노이슈반슈타인성

 

아래는 내가 카메라로 찍은 노이슈반슈타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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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아래는 노이슈반슈타인에서 찍은 주변 풍경

 

요 아래는 노이슈반슈타인에서 찍은 주변 풍경

 

퓌센 역에 도착해서 기차를 타려고 보니 16시에 출발 예정이었던 직행이 지연되었다. 어쩔 수 없이 역사에서 1시간 이상을 기다리게 됐다. 배가 고파서 초콜릿을 사 먹고 기다리면서 짝꿍과 연락을 하는데 반응이 너무 이상해서 전화를 걸었다. 굉장히 늦은 시간임에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다. 내가 보고 싶어서 우는데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얼른 다시 잠들어야 아침에 또 인사를 할 텐데 쉽지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짝꿍과 통화를 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듀플로와 모차르트 초콜렛
돌아가는 길의 노을


17시 넘게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뮌헨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너무 피곤해서 대화를 잘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자세하게 생각나는 건 퓌센역에서 군인을 보며 최 군을 놀리던 언니의 모습이다.


일정에 넣고 싶었으나 빼려고 했던 퓌센 행을 언니가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다며 추가해준 덕분에 노이슈반슈타인에도 다녀올 수가 있었다. 제목에도 썼듯, 바그너가 만든 음악 속 세계가 펼쳐진 동화 나라의 성이었다. 늘 글로만 봐 온 것을 실제로 눈앞에 두었을 때의 감동이란 것은 이런 걸 말하는 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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