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19 동유럽] 02. 독일의 정상 - 추크슈피체 Zugspitze

여행/동유럽 in 2019

by mizu-umi 2021. 2. 1. 11:12

본문

728x90

초등학교 4학년 때 현장체험학습의 일환으로 학교 뒷산을 올랐던 적이 있다. 소풍 가는 마음으로 다같이 즐겁게 등산했는데 문제는 하산 하는 길에 발생했다. 우리 반 아이들을 이끌던 방과후 컴퓨터 교실 선생님이 그만 하산 하는 길을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 하필 인솔하는 어른이 선생님 한 사람 뿐이어서 4학년 전체가 하산 하는 길을 찾아 산을 떠돌기 시작했다. 솔직히 건축된지 고작 3년 밖에 안된 학교라 4학년 전체라 해봤자 우리반 하나가 다였지만 적지 않은 인원이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니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등산로에 있는 표지판을 의지하며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컴퓨터 선생님이 꾸준히 다른 선생님들과 연락을 취한 덕분에 하산하는 길을 찾아냈는데 내려오고 보니 학교에서 정반대 편에 있는 커뮤니티 센터에 도착했었다. 학교보다 낮은 지대에 있고 전용 버스를 타고 30분 가까이 달려야만 도착하는 거리에 있는 커뮤니티 센터까지 왔으니 산 속에서 꽤 오랜 시간을 체류했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 등산이나 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꼭 그때의 일이 떠오르곤 했는데, 독일을 다녀오면서 내 안의 산에 대한 추억이 새롭게 하나 추가되었다. 가르미슈 지방에 있는 만년설의 산 추크슈피체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좌석 앞 스크린에서 찍은 곧 뮌헨에 도착한다는 항공지도

 

북경공항에서의 출발 지연으로 인해 원래 예정 시간보다 두시간 정도 늦게 뮌헨에 도착했다. 8~9시간 정도의 비행에서 오사카에서 북경 가는 사이에 미처 다 보지 못한 영화를 끝내고 남은 시간은 얕은 잠을 청하며 보냈다.

 

저녁 기내식
아침 기내식. 모닝 세트 같았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기내식은 총 두 번 제공되었다. 한번은 저녁 식사처럼 나왔고 나머지 한번은 아침 식사처럼 나왔다. 기내식은 오사카-북경 편에서처럼 만족스러웠다.

 

 

뮌헨에 도착해서 밖으로 보이는, 이제 막 해가 뜨는 독일의 아침을 보며 내가 드디어 유럽에 왔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비행편을 끊어 놓고 나서도 언제 갈지 마냥 막연한 대륙이었는데 어느새 뮌헨에 도착해 있었다. 감상은 잠시, 일단 내려야 했기 때문에 허둥지둥 일어나서 짐부터 챙겨서 서둘러 나왔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빼먹지 않은 것은 와이파이 접속. 가족을 포함해 짝꿍, 주변 사람들에게 톡으로 뮌헨 도착을 알렸다.

 

공항 통로

 

착륙을 얼마 안 남기고 화장실 가고 싶은 걸 꾹 참았기에 나가는 길에 화장실 먼저 들렀다. 그곳에서, 한국이나 일본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알아서 돌아가는(?) 핸드타월을 봤다. 화장실 하면 일본 화장실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본에는 비데부터 시작해서 별에 별 장비들이 공용 화장실에 준비되어 있는데 이렇게 자동으로 돌아가는 핸드타월은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생각보다 충격이었다.

 

볼일을 다 보고 이어진 통로를 따라 쭉 걸으니 입국심사대가 나왔다. 타지역에서의 출발지연으로 인해 입국심사대에 사람이 몰린 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가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서 일단 사람 많은 줄에 섰다.

 

문제는, 그게 화근이 되어 생각보다 많이 기다려야 했다. 하필 내가 선 줄이 각 항공사의 승무원 검사도 하는 곳이어서 승무원들, 특히 중국 승무원들 지나갈 때 시간을 오래 잡아먹었다. 태국 승무원들은 아이디만 보여주면 패스시켜주는데 중국 승무원들은 하나하나 체크하는 걸 보면, 공산주의 국가의 항공기 승무원들에게 적용되는 절차인 것 같았다.

 

 

입국심사를 기다리면서 언니에게 연락하고, 어느 터미널이냐는 질문에 대충 눈에 보이는 대로 답했다. 다만 내가 말한 그곳이 아니어서 언니를 잘못된 방향에 가게 했는데 다행히 언니가 바른 곳을 찾아왔다. 하하.


가장 우려였던 짐도 성한 몸으로 뮌헨까지 잘 도착했다(*). 에어차이나에 대해 검색하면 짐이 파손되어 온다는 후기가 상당히 많아서 많이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짐을 찾고서는 바로 입국장으로 나와 언니를 만났다. 결혼식 이후 5년 만에 보는 것이었음에도 서로 한 번에 알아봤다. 언니는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 정작 그 캐리어는 에어차이나가 아닌 에어ㅅ울을 타고 김해-오사카를 가는 비행편에서 손잡이 부분이 부서진 채 내게로 돌아왔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왼: 티켓부스, 오: 에스반(S Bahn) Bahn은 독일어로 열차라는 뜻.


서로 지난 5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공항철도로 향했다. 언니가 티켓을 끊는 동안 뮌헨의 전철역 플랫폼을 둘러봤다. 외부에 있는 창구가 아닌 내부의 기계에서 티켓을 뽑아야 한다는 특이점이 있다는 것만 빼면 한국과 일본과 비교해서 큰 차이는 없었다.

 

아직은 모든게 신기한 사람의 시선으로 찍은 사진들

 

전철을 타고 가면서 금요일에 정해놓았던 일정을 날씨 사정상 오늘로 옮겼다는 이야길 들었다. 카톡으로 주고받은 내용에는 금요일에 비가 오니 일정을 바꿔보자 정도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오늘 산을 탄다니(?!)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얼마 없는 시간 동안 유럽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나름대로 강행군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언니 집에 들러 짐을 풀었다. 아직 한참 아침(독일 시간 9시)이었지만 심하게 피곤하거나 졸리지 않았다. 나갈 채비를 다시금 하고 뮌헨 중앙역으로 향했다. 

 

뮌헨 중앙역
 vinzenzmurr의 치킨랩, 스벅 커피

 

언니는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노란색 종이에 쓰인 시간표를 보았고 나는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탈 예정인 기차는 오전 10시 30분 출발 예정이었다. 공복이라 눈에 보이는 가게 중 vinzenzmurr란 곳에서 식사 대용으로 먹을 커리치킨랩을 하나 샀다. KFC에서 파는 치킨랩과 비슷한 음식이었다. 스타벅스에 들러서 언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는 캬라멜 마키아토를 사서 언니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출발선으로 걸어갔다. 

 

언니의 친구인 R은 남아공 사람으로 남편의 일 때문에 뮌헨에서 거주 중이었다. 남아공에서는 종합병원 의사였으나 현재는 무직인데, 영어는 되는데 독일어를 할 수가 없어서(*)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영국으로 건너가서 다시 공부하고 의사로 취직할 거라고 했다.

 

* 어느 나라든 응당 그래야하겠지만 독일에서 취직하려면 수준급의 독일어 실력이 필요한 것 같다.

 

가르미슈행 3인용 바이에른 티켓. 가격은 39유로, 1인당 13유로이다. 이름을 직접 적어야 한다.


R과 합류한 다음 기차에 바로 탑승해서 자리를 잡았다. 인기가 많은 편은 나중에는 앉아서 갈 곳이 없다고 언니가 자리잡기를 서둘렀다. 출발 직전 화장실이 급해졌다. 기차 안에는 큰 화장실 칸이 있었는데 문 여는 법을 몰라 헤매고 있으니 주변에 앉아 있던 독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버튼 누르는 거야'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유럽에서 경험한 첫 번째 친절이었다.

 

 

볼일을 보고 나서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북경의 낮과 매우 대조적인, 맑은 하늘과 풍경이 창 너머로 눈에 들어왔다. 액션캠을 가져왔다는 생각에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셔터를 눌러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가 향하던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이하 가르미슈) 독일 남부 바이에른(Bayern)주에 위치한 산악지역으로 원래는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으로 나뉘어 있던 곳이 1934년에 올린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합쳐졌다고 한다.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추크슈피체 산Mt. Zugspitze을 오르는 것이 이 날의 일정이었다. 기차 안에서 액션캠으로 바깥 풍경을  찍다 끄기를 반복하다 여독으로 피곤한 나머지 잠이 들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겨울이란 것을 실감하게 할 만큼 넓은 들판이 눈으로 덮여 있었다. 기온 자체는 일본하고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건조한 날씨 탓에 햇볕이 뜨거워도 눈이 잘 녹지 않는 것 같았다. 뮌헨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더 짙은 설경이 펼쳐졌고 가르미슈 근처는 눈만 보였다. 일본에서는 북해도나 나가노 주변을 가면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으로 차이가 있다면 이렇게까지 드넓을 것 같지는 않았다. 

 

가르미슈의 투어리스트 센터
추크슈피체행 표판매처
판매처 근처 풍경
파노라마 뷰 맵과 추크슈피체의 티켓

 

가르미슈에 도착하고 나서 언니를 따라 추크슈피체로 갈 수 있는 티켓을 사러 표판매처로 갔다. 추크슈피체가 산이다보니 어느 지점까지 올라가는 기차를 타고 케이블카를 타거나 하는 비용이 1인당 왕복 46유로(*)였다. 우리 세 사람이 바이에른 티켓으로 가르미슈와 뮌헨을 왕복하는 비용이 13유로인 것과 비교하면 비싼 편이었다.

 

* 2019년 2월 기준

 

강렬한 태양;;ㅁ;;


먼저 기차를 탔다. 자리를 조금 잘못 잡아 앉는 바람에 삭막한 바깥 풍경과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 갔다. 가르미슈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기차 바깥으로 바라본 풍경은 매우 고요했다. 기차 안의 사람들도 별다르게 말이 없어서 그런지 정적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한참을 올라가다가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내리고 다른 차로 갈아탔다. 가르미슈 지방 자체가 그 근방이나 유럽 사람들에게는 스키와 스노우보드 핫스팟인지 장비와 함께 제대로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처럼 설경을 보러 가는 외국인들도 있고 강아지와 함께 탄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대부분의 사람은 정상까지 가지 않고 내렸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갔다.

 

*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많이 내린 곳이 케이블카가 있는 아이브제 인 것 같다

 

기차 안에 있는 스크린. 추크슈피체의 역사를 소개한다.


기차는 터널 안에 진입한 후 한참을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갔다. 창 너머로 산의 내부만보이는 체감 시간 20분가량, 스크린에 소개되고 있는 추크슈피체의 역사를 보았다. 아쉽게도, 보다말다 한지라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상에 다다르고 나서야 기차가 멈췄다. 기차에서 내려 출구를 나오니 눈이 부실만큼 흰 설경이 펼쳐졌다. 많은 사람이 스키와 스노우보드, 썰매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화장실에 들러 볼 일을 보고 서둘러서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 정류소로 갔다. 높은 곳을 굉장히 무서워하는 나지만 군소리하지 않고 탔다. 올라가는 내내 상당히 긴장한 반면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우리 모두 배가 고팠지만 추크슈피체의 설경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케이블카가 안전하게 정상에 도착하자 서둘러서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추크슈피체의 설경!

(참고로 엄청난 스(크롤)압(박)이라 접어뒀음. 궁금하면 열어보세요!)

 

더보기

 

 

여기까지는 아이폰8 기본 카메라 어플로 촬영한 것.

 

 

여기까지는 삼성 NX1000 망원렌즈로 촬영한 것.

사진 속 검은 점은 모니터의 문제가 아니라 제 카메라 문제랍니다...^.ㅜ

 

말로 설명을 못 하겠다. 사진으로도 담을 수가 없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그때 느꼈던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아이시스 생수통에 그려진 겨울 산맥이 내 눈앞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해발 3km 지점이다 보니 숨 쉬는 게 쉽지 않았지만 아무렴 좋았다. 높은 곳이 무섭기는 했지만, 그 경이에 매료되어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추크슈피체를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간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런 좋은 코스를 생각해준 언니에게 감개무량할 따름. 

 

추크슈피체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사이에 있다. 알프스 산맥을 타고 이어진 산이라 저 멀리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눈에 덮인 산뿐이었다. 이렇게 눈앞에 오로지 산뿐이고 눈으로 뒤덮여 있을 뿐인데도 화려한 풍경을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아름답다 경이롭다는 말 밖에는 더 이상 그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쉽다.


시야를 뻥 뚫리게 하는 자연 광경을 즐기고 나니 잊고 있던 허기가 돌아왔다. 정상을 뒤로하고 아래층의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구글 맵에서 가게에 대해 조사해보니 추크슈피체 정상에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식당인 것 같았다. 가게 이름은 Panorama Lounge 2962. 사방이 추크슈피체를 만끽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있어 우리가 정상에서 보지 않았던 쪽을 향해 있는 창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파노라마 라운지 2962의 내부. 이 정도 밖에 찍지를 못했는데 내부가 정말 예쁘다.
우리가 앉았던 자리 너머로 보이던 풍경.

 

유럽 오기 전에 음식에 대한 사전 조사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해산물류가 아니면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주문하는 것에 애로사항이 발생하여 언니들이 골라줬다. 나와 언니는 커리부스트, R은 마르게리타, 음료는 각자 라들러, 와인, 라떼였다.

 

베지테리안인 R이 시킨 마르게리타 피자. 정말 맛있었다ㅠㅠ
내가 시킨 라들러 비어와 커리부스트.
모두를 위한 팬케이크 후식.

 

라들러 맥주는 굉장히 생소한 레몬 맥주로 첫 입맛이 너무 달아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달콤한 맥주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맥주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는 맥주라고는 카*나 아*히 삿*로 정도 밖에 없는 내게 신세계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다음번 유럽여행에는 더 많은 돈을 챙겨서 마실 수 있는 맥주는 다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커리부스트를 먹으면서 라들러를 마시며 창 너머로 펼쳐지는 추크슈피체를 감상했다. 배가 부르고 술기운이 올라와서 살짝 졸음이 쏟아졌다. 유유자적하게 오후의 여유를 즐기다가 다시 한번 산의 정상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계산을 하려고 하니 우리가 자리에 앉고 나서부터 계속 우리의 주문을 받던 사람이 테이블에서 돈을 받았다. 여기서,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길래 왜 안 주냐고 따지고 말았다, 바보같이(ㅠ). 서양은 팁 문화가 필수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뒤늦게 팁 문화를 상기하고 나서 웨이터에게 미안해졌다. 그대로 킵 더 체인지Keep the change라고 해야 했는데…! 이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곳에서는 잔돈을 적당히 받거나 받지 않았다.

 

레스토랑을 나와서 정상을 다시 한번 올라가 사진을 찍고 언니가 어딘가에 호수로 내려가는 케이블카가 있을 거라고 해서 그 뒤를 따라갔다. 문제는 알고보니 그곳이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국경이어서 우리 모두 허둥지둥 다시 정상 쪽으로 갔다. 하마터면 오스트리아로 넘어갈 뻔했다.

 

케이블 카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찍은 풍경. 참고로 저 액션캠은 내거다...
Eibsee 정거장


내려갈 때는 기차로 갈지 케이블로 갈지 고민하다가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타면 우리가 지나온 정착역 중 하나인 아이브제Eibsee로 10분에서 20분 만에 내려갈 수 있었다. 다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게 정상에서 지상으로 바로 내려가는 직행 케이블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액션캠을 내가 선 자리에 대충 말아서 고정해놓고(?) 나는 최대한 밖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잔뜩 겁먹은 상태로 있다가 가방에서 짝꿍이 사준 고슴도치(인형)을 꺼내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액션카메라의 영상 촬영을 케이블카가 움직이자 바로 시작해서 멈추는 타이밍에 셔터를 누르니 대략 8분 30초 가 흘러 있었다.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역


아이브제에서 기차를 타고 가르미슈역으로 향했다. R이 뮌헨으로 가는 차가 다섯 시에 있을 거라고 말해서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역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뮌헨 행은 아직 출발 전이었다. 기차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가 화장실을 잠시 다녀온 새에 낯선 아저씨가 언니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언니가 표값을 할인 받기 위해 카페에서 찾은 동행원이었다. 갑자기 연락이 안 되어서 나와 R하고만 온 것인데, 아저씨는 뒤 늦게 메세지를 확인하고 혼자서라도 추크슈피체까지 왔다고 했다. 언니 얼굴을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고 살펴보다가 카톡에 추가한 얼굴이란 것을 알아보고 언니에게 말을 건 것이다.

 

돌아가는 길 내내 아저씨의 나홀로 여행기를 들었다. 직장 일로 해외 출장이 잦은 분이신 것 같았다. 혼자 10일을 여행하다가 이렇게 동행을 구하기도 했고 술도 한잔하신 상태라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혼자여행하다 사람 만나면 할 말이 많아지는 건 아저씨 만의 일이 아니어서 우리 세사람 모두 잠자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도중에 하차하고 잠들었다.

 

17:49 뮌헨에 도착했다.


뮌헨에 도착해서 R과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언니 집 근처 역으로 돌아왔다. 아직 형부도 식사하기 전이어서 슈퍼에서 언니와 함께 장을 봤다. 아직 한참 겨울 날씨였던지라 건조한 나머지 목이 너무 말라서 환타를 하나 사서 마셨다. 집에 도착해서는 쏟아지는 피곤함을 무릅 쓰고 샤워를 했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물건들을 정리하고 자리에 누웠다. 

 

슈퍼


독일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내 발로 올라간 것은 아니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이동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추크슈피체라고 하는, 이름은 생소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풍경을 마주하고 난 후라 가슴은 벅차 있었다. 언제 또 다시 갈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 풍경을 꼭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