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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시마향설미술관中之島香雪美術館 - 무라야마 료헤이관 / 상설전시

감상/기타 문화예술

by mizu-umi 2023. 5. 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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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예술기행] 나카노시마향설미술관 기획전『수리 이후에 에토세토라 修理の後にエトセトラ

일본에 있는 동안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기획전을 다녀보기로 했다. 노션으로 전시장과 전시회 데이터베이스를 각각 만든 다음, 캘린더 보기를 하나 만들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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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전시를 다녀오면서 향설미술관에 전시된 무라야마 료헤이 기념 전시도 함께 관람했다.

 

 

무라야마 료헤이(村山龍平)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사 중 하나인 '아사히 신문'의 창간자로, 향설미술관의 향설은 그의 호이다. 소위 '검은 배(黒船)'라고 불리는 페리호의 도착으로 강제 개국을 하게 된 일본이 수많은 미술품을 빼앗기는 걸 멈추고 싶어서 미술품 수집에 힘을 썼다고 한다(향설 미술관 소개).

 



❏ 무라야마 료헤이 기념실


무라야마 료헤이 "아름다움에 대한 마음"

 

전시 공간은 수리 후에 에토세토라의 제2장과 3장 사이의 공간에 있었다. 무라야마 료헤이가 살던 저택을 재현해놓았는데 굉장히 현대적인 바깥을 보다가 이 안으로 들어가면 20세기 초두로 회귀한 기분이 든다.

 

 

벽지 무늬가 특이해서 남겨보았다. 건물 인테리어는 서구식이지만 벽무늬는 굉장히 일본스럽다는 점이 당시의 일본 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국화

 

신문 창간 이후 일본에서 처음으로 창간된 미술 잡지인 "국화國華"의 경영도 이어받았다고 한다. 현재도 아사히 신문에서 매월 20일에 출간하고 있다.

 

디오라마

 

무라야마 료헤이의 저택 디오라마. 양식 건물과 화식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시관을 구경하다가 그 사이사이로 뚫려 있는 창문 너머로 찍어 본 나카노시마의 풍경. 날이 좋았더라면 훨씬 화사하고 아름답게 보였을 것 같다.

 

창간 당시의 료헤이

 

메이지 21년이었던 1888년, 아사히 신문을 창간했을 때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아직 20세기에 접어들기도 이전의 격변의 일본에서 어떤 뜻을 가지고 행동에 옮겼고 서구의 스타일을 받아들이면서도 일본스러움을 지키려고 했다는 점이 굉장하게 느껴진다.

 

 

굉장히 흥미로워서 남긴, 아사히신문사 건축의 변천사. 1968년까지는 향설미술관과 페스티벌홀이 있는 건물이 아사히 신문사의 본거지로 사용되었다. 지역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잘 정리해서 맘에 들었던 도표다.

 

 

무라야마의 업적을 기리는 공간. 굉장히 작고 좁은 공간에 소개되어 있다. 자세하게 읽어보진 않았다.

 


 

 

기획전시장을 나가는 출구 쪽에는 향설미술관의 상설전시 중 하나인 '겐안玄庵'이 있다.

 

겐안

 

무라야마는 일본의 다도를 굉장히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겐안은 그의 대저택에 있던 차실로 향설 미술관의 출구 쪽에는 원형 사이즈를 그대로 재현한 복제 건물이 있다. 조명과 영상으로 겐안에서의 사계절을 표현하고 있으며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데다가 건물 앞에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있어서 관람이 끝난 다음에 마음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 사이에 사업을 했던 일본 사업가나 사상가, 문학가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보면 우선 흐린 눈을 뜨게 된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일본인 친구를 사귀며 일본 예술을 향유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일본에게 지배당한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의 국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근대의 일본인 사업가들이나 사상가들이 남긴 업적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 과정에서 '정한론'이나 식민지배, 군국주의적 사상이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그의 훌륭한 업적 아래에서 괴로워했을지도 모르는 조선 사람들이 생각나 착잡해진다.

 

관람을 하면서 한국어로 무라야마 료헤이에 대해 검색해보았는데, 내가 우려한 부분들과 관련한 이야기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을 좋아하고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더라도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다. 예술을 비롯해 어떤 것이든 "맥락"과 "역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잘 알지 못한 채 향유하기만 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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