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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경의 남쪽 (2006)』

과거의 흔적/후기

by mizu-umi 2020. 3. 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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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9일에 쓴 리뷰)

 

최근에 시트콤 선녀가 필요해와 안녕 프란체스카를 보는 중이다. 두 작품의 가장 큰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심혜진'이란 배우가 나온다는 점. 프란체스카를 보면서도 선필을 보면서도 이 '심혜진'이란 배우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다른 작품은 없나 하면서 찾아봤던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이 '국경의 남쪽'이었다. 작년에 한창 인디영화를 볼 적, 영화 두만강을 보고 북한 관련 작품에 관심이 많이 기울었는데 이 국경의 남쪽은 볼까말까 고민을 하다가 스토리 뿐 아니라 평점도 꽤 괜찮아 보기로 마음 먹었다. 

 

국경의 남쪽. 솔직히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영화의 스토리와 제목 사이에 별로 관계성이 없는 듯 싶다. 제목만 보면 그냥 일반 탈북에 대한 영화인 것만 같은데 깊이 들어가면 또 그런것만은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선호는 흔히들 가지고 있는 '북한 사람들은 못산다'라는 편견을 깰만큼 수도인 평양에서 받을 혜택은 다 누리며 가족들과 살아왔다. 인민군으로써 전쟁당시 사망한 할아버지 덕에 생활보조금을 국가에서 대주기 때문이었다. 악단에서 호른을 불고 큰 식당에서 냉면도 먹고 예쁜 애인까지 두고. 남쪽사람들이 각종 미디어로 접하는 북한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그는 만족스런 삶을 산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잠시, 90년대에 북한의 '수령님'이었던 김일성의 죽음 이후, 전쟁당시 사망한 줄 알았던 할아버지로부터 비밀 편지가 오기 시작하고 그 편지를 계기로 그의 인생은 180도 변해버린다.

 

처음에는 남조선에 갈 마음도 없었다.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하고 고향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그가 꿈꾸던 것은 그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서 편지에 대해 알아 챈것 같다는 아버지의 말은 그에게 청천벽력이었다. 정부에서부터 조사가 시작되면 분명히 정치범으로 몰려 자신과 가족들은 수용소로 끌려갈 것이고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생활을 할게 불보듯 뻔했다. 결국, 남조선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선택을 내리게 된 선호는 연인인 연화를 차마 두고 갈 수 없어 가족들과 이미 모든 약속을 하고 넘어갈 준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품에서 놓지 못한다. 그녀에게 함께 가자 하지만 그녀는 선호에게 먼저 남조선에 가있으라고 말하며 그를 떠나보낸다.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넘어와 베이징 독일 대사관에 도착한 선호의 가족은 모두 무사히 남한 땅을 밟는다. 도착일이 좀 늦어져 결국 조부와 만나지 못한 채 도착하자마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 선호의 가족은 평양음식을 파는 작은 식당을 시작한다. 남한 땅에 와서도 연화를 잊지 못하는 선호는 어느날 아버지가 사온 호른을 불며 추억에 젖어든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북조선에서 함께 보냈던 추억 모두 그의 가슴에 아로 새겨져 있었다. 연화와 했던, '남조선에서 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호는 어떻게던 돈을 벌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탈북시키려고 한다. 한번은 전재산을 털어서 투자를 했음에도 사기를 당해 그 사기꾼을 쫓던 중 심하게 다치게 되고 그때 그의 평생 반려자가 될 경주를 만난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경주의 도움으로 온갖 알바를 하고 여러 교회에서 간증을 하며 사례비를 모아 연화를 남한으로 빼오려는 계획을 세우는 선호. 하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그 세사람 분의 돈을 모으기란 쉽지가 않아 힘겨워 한다. 그러던 중, 누나 선우로부터 연화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선호는 절망한다. 사랑하는 여인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선호는 모든 것을 잊고 남한 땅에서 살아가고자 자신에게 선의를 베푼 경주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된다. 탈북한 해로부터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2004년. 결혼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호는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되고 남조선 땅에서 연화와 재회하게 되고 그때부터 새로 시작된 선호의 삶에 시련이 찾아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사람은 언제나 자신에게 있어 '첫번째'였던 것을 잊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도 그렇고 우리 가족들도 그렇고, 다들 어려서던지 나이들어서던지 처음 겪었거나 가졌던 물건에 대한 것은 잘 잊지않고 간직하고 있더라. 나 같은 경우엔 처음으로 보도블록이 손에 떨어져 손가락을 심하게 다쳤을 때라던가, 반에서 1등을 했었던 때라던가, 네살때 아빠를 따라 남탕을 가봤던 때라던가, 그때의 일들은 유독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아빠를 따라 남탕을 갔던 일. 한 십오년 전 일인데 다른 건 다 잊었어도 그때 느꼈던 그 음산함과 어두움만큼은 언제 떠올려도 소름이 끼친다(ㅋㅋ;)

 

그 다음으로 오래 기억하고 있는 하나가 바로 어린이집 다닐 적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의 이름이다. 나와 같은 나이의 남자아이로 웃으면 보조개가 깊숙이 들어가고 장난끼가 넘치던 애였다. 엄마들끼리도 친분이 있어 가끔은 그 아이 집에 놀러가 밤새 놀기도 했다. 그때 함께 놀았던 그 아이의 형도 기억한다. 벌써 십여년전 일이지만 다른 애들보다도 유독 그 아이를 기억함은, 분명 그 아이가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였기 때문이리라.

 

영화 속 선호도 그랬다. 선호가 연화 외에 누구를 만났다던가 하는 얘기는 영화에 나오지 않았기에 그녀가 그의 첫사랑이라고 하는 건 단순한 추측일지 몰라도 '결혼하자'하고 평생의 반려로 생각하고 그렇게 애틋하게 사랑한 만큼 선호에게 있어 연화라는 여자는 단순한 사랑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렇기에 결혼했다는 그 소식을 듣고 술에 취한 나머지 휴전선을 넘으려고 하고 이미 경주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아온 연화와의 만남을 이어갔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거'와 '현재'의 사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선호의 모습은 불안불안해 보였다. 분명히 연화를 만나고 돌아온 집에서 경주를 보면서, 혹은 연화를 만나는 그 자리에서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그의 마음 속에 매번 자리잡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연화는 현재의 경주보다 더 큰 의미이고 사랑이었다. 넘어선 안되는 선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주를 떠나 연화의 곁에 남으려 한다. 과거의 것들을 버리고자 했던 그였지만 다시 한번 그 과거의 것들을 붙잡고 만다.

 

선호가 연화를 만나는 일이 잘못된거라고는 못할 것 같다. 내가 만약 경주고 연화와 선호의 관계를 알았더라면 나는 솔직히 내가 선호를 놔줄 테지만 (난 워낙에 그러니까) 일반 사람이라면 얼마나 화가 날까 싶은 상황이긴 했지만 말이다. 연화에게 결혼했단 얘기도 안하고 처음부터 거짓말을 한 것만큼은 용서하지 못해도 그의 행동은 순전히 오랜시간 가슴에 쌓인 한과 원망, 그리고 그리움에서 피어난 애틋함이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안타까운 탄식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차마 가슴 아파서 연화가 선호가 경주와 함께 나오는 방송을 보는 장면은 보지 못하고 넘겨버렸다.

 

그때 선호가 말한 '사랑해'라는 말은 누구를 향한 말이었을까.

 

선호네 가게에 대한 방송이 나가고 난 후, 선호는 연화가 있는 센터로 쳐들어가 그녀에게 이별 통보를 한다. 다시는 널 보지 않을거고, 나는 더 이상 예전에 내가 아니라고 소리치면서. 차라리 처음부터 저리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했던 장면이었다. 방송으로 한번 못박고 그렇게 찾아와 두번 못박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상처만 가득 남겨주는 그 모습이 안타깝고 얄미웠다. 내가 여자라서 특히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후에 연화는 선호네 가게에 찾아가는데 장사가 다 끝났어도 찾아온 손님에게 냉면 한그릇 건내기 위해 불떼우고 준비를 하는 경주를 보고서 연화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미 충분히 많이 엇갈리고 잘못된 재회를 한 두 사람은 우연히 서로의 보금자리를 찾아간다. 연화는 선호네 가게로, 선호는 연화가 있는 센터로.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찾는 만큼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상심한 선호는 버스를 타고 귀가를 하게 되고 정류장에서 연화를 발견한다. 상당히 영화적으로 극적인 장면이긴 했지만, 아주 조그마한 미련의 조각이 가슴에 박혀있다면 이런 기적적인 재회가 다시 한번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마주친 선호와 연화는 어딘가 멀리로 떠난다.

 

결국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선호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하는 것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똑부러지고 곧았던 연화였다. 다시 어딘가 멀리로 떠나자는 선호와 함께 바다를 찾아온 그녀는, 방에 그를 홀로 남기고 훌쩍 떠나버린다. 그녀가 이리도 단호해질 수 있었음은 아마도 그 전날 만났던 경주에게서 보았던 선호에 대한 진심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눈을 뜬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그녀를 속초의 이곳저곳을 돌며 한참동안 찾아헤매지만 선호는 그녀를 찾지 못한다.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 그녀가 떠나버린 자리에 멍하니 앉아 창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는 다시 한번 찾아온 절망만이 비춘다. 첫사랑. 미련이 남아 보내지 못했던 그 첫사랑의 말로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훗날 시간이 흐르고 연화의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보게 된 선호는 다시 한번 첫사랑의 애틋함에 빠지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경주의 곁에서 딸 정화와 함께 웃는 모습으로 가족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영화가 막을 내린다.

  

난 멜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괜찮은 작품 하나 본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려고 한 의도는 전혀 다른 거였어서 그렇게 크게 집중은 못했는데 (솔직히 심혜진씨 보려고 본 영환데 심혜진씨가 너무 많이 안나왔다;(나름 주연인데;)) 연기파 배우 차승원과 주이진, 그리고 심혜진의 연기가 영화를 참 소박하고 또 더 애틋하게 한듯 하다. 심혜진씨, '치킨집아줌마'로 나온 점에는 빵빵 터졌다. 2005~2006년까지 한 프란체스카에서도 닭파는 장사를 했는데 2006년 개봉한 새작품에서도 여전히 닭을 팔고 있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ㅋㅋ) 

 

멜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 멜로를 봐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싶은, 괜찮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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