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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디아스포라전 2. 연극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 (국립극단 소극장판)』

과거의 흔적/후기

by mizu-umi 2020. 3. 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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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8

 

연극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

윤색/연출 부새롬

2017년 6월 11일, 6월 14일 관극

스포 有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고 내가 봤던 네가지 중 가장 어둡고 아팠던 작품. 다른 건 몰라도 작가인 인숙 차펠이, 가족을 찾아 왔던 타지에서 느꼈던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그로 인한 분노를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는 데 정말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다.

 

미소와 한솜. 닮은 듯 다른 두 사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오랜 세월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단번에 알아보지만 헤어져있던 시간이 두 사람 사이에 만들어 놓은 골이 너무 깊은 나머지 이야기는 계속 비극으로만 치닫는다. 극을 보고나면 웬만해선 후기를 찾아보지 않는 편인데 디아스포라전은 유독 후기를 찾아봤다. 와중에 이로아(나는 줄여서 이렇게 불렀다)의 후기는 '이해할 수 없다'라는 내용이 가득했고 나 또한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땐 사고가 멈춰버렸다. 누구나 마음 한켠에 암묵적으로 금기시하는 '근친상간'이 대놓고 펼쳐지는 무대. 어느 정도 알고 봤지만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용비어천가의 마지막 공연을 보고 얼마 안 지나서 이로아를 봤음에도 용비어천가가 잊혀질 만큼의 충격이 있었다. 용비어천가에 이어 이로아도 함께 본 D양도 뭔가 말을 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했다.

하루 지나고 고민고민하다 14일 공연을 예매했다. 뭘 기대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한번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 두번째로 접한 이로아는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꼭 저렇게 극단적일 수 밖에 없는 건가, 라고 생각했던 한솜이라는 인물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부모님의 죽음도 잘 모르는, 그저 누나만을 의지할 뿐이었던 아이는 누나에게 철저히 버려지고 어떻게던 살아남았으나 외로움이라는 공포 속에서 살고 있었다. 미소가 여자로 보인다며 그녀를 탐하지만 한솜의 몸짓 하나하나에는 자신과 닮은 두 눈동자를 한 누나에 대한 애증과 그리움이 엉켜있었다. 누나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며 눈물 흘리는 그를 보며 나도 울었다.

미소와 한솜. 두 사람의 극단적인 상황은 결국 세상에 단 둘만을 남겨 놓는다. 그런 둘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한 소설의 남매가 생각났다. 부모의 학대와 방관, 사랑받고 싶었기에 했던 몸부림으로 인해 찍혀버린 낙인. 결국 세상에 단 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동생은 오빠의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지만 받아 본 적 없는 사랑을 줄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두 사람이 벌인 일과는 무관하게 참 안타까웠는데, 그게 이렇게 무대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니 -오해는 말것, 그 소설과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 어쩌면 이렇게 외로운 사람들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 중 가장 눈에 띄었던 배우님은 성여진 배우님인데 난 처음에 나왔던 통역사하고 나중에 나온 나오미가 동일 인물이었단 사실에 매우 놀랐다. 전혀 다른 사람이라 생각될 만큼 다른 톤으로 연기하고 계셨고 커튼콜 때 배우가 다섯명밖에 안 나와서 엄청 놀랐다...☆ (후에 성배우님을 뵜을 때 그 부분을 말씀드렸다ㅎ) 한솜 역을 맡았던 조재영 배우님도 굉장했다. 감정의 섬세함이 살아있었고 한솜 그 자체였다. 배우님의 몰입도에 나도 몰입되어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두고두고 기억할 연기.

 

다음 작품을 볼때까지 한동안 나를 지배했던 극으로 나한테는 용비어천가에 이은 또 다른 호였다. 디아스포라전 작품 중 유일하게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다. 극을 보고 인숙 차펠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그녀의 애증이 느껴지고 왜 이런 작품이어야만 했는가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이기에 그녀의 아픔을 십분 이해하긴 어렵지만. 오랜 여운을 남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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