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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신의 막내딸 아네모네』(20210307,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감상/공연

by mizu-umi 2021. 3. 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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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팬데믹 사태가 아니었다면 도쿄에서 개최되는 연극 페스티벌에 출품되었을 작품이었다. 국내외에서 공연을 하기가 많이 어려워졌다보니 우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공개되었고 작품에 주연으로 나온 배우님을 보기 위해(ㅎㅎ) 스트리밍 티켓을 구매해서 봤다. 문제는 스트리밍 사이트의 서버 불안정으로 중간중간 튕겨져서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쉬움을 갖고 잊고 지내던 어느날, 공연계를 조이던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되면서 본 작품도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 남짓 하는 공연이라 언제 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일요일 공연을 예매했다. 극장에 조금 일찍 도착하게 되어 점심을 먹고 유유자적하게 공연 시간을 기다렸다.

 

대극장 앞에 걸린 배너
극장 로비의 포토부스

 


 

연극 [신의 막내딸 아네모네]는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원작 [꿈의 연극]을 도쿄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츠이 슈라는 작가가 각색한 작품으로, 자신을 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 아네모네가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고 체험하는 이야기다. 원작의 번역본은 현재 절판된 상태고 중고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책을 빌릴 수 있을 도서관들에 작가 이름을 검색해도 꿈연극이 아닌 [줄리 아씨] [유령 소나타] 같은 작품만 나와서 영어 버전을 읽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영어 번역본을 읽기 시작하면 내가 봤던 극의 여운은 사라질 것 같으므로 본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시끄러운 파티장의 열기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네모네는 자신과 다르게 사람들 틈에 섞여있는 엄마에게 '나는 사실 신의 딸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엄마는 아네모네가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아네모네는 자신이 신의 딸인 것을 굳건하게 믿고 있다. 이때 신이 나타나 아네모네의 이름을 부르고 아네모네는 인간세상에서 아빠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인간들에 대해 더 배우겠다며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이유를 말한다.

 

아네모네는 인간의 몸을 입고 지상에 내려와 인간들을 만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극장 밖으로 나오는 것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공무원, 죽은 공무원의 엄마, 그리고 나이든 공무원을 돌보는 간호사에 이혼을 전담하는 변호사 등등, 다양한 처지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신의 딸이라고 소개하면서 많은 질문들을 하는데 인간들의 답이 별안간 시원치않다. 의문만을 가진 채 아네모네는 나름의 인간체험을 하려는지 '사랑의 힘'을 믿겠다며 이혼 전담 변호사와 결혼을 한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가난을 겪으며 아네모네의 모습은 야위었다.

 

 

컬처브릿지에서 온라인 스트리밍을 하던 날, 앞서 언급했듯 서버 불안정으로 튕겨져 나가서 이야기의 맥락이 자주 끊겼었는데 마지막 커튼콜까지 다 보고나서 내가 공연을 온전히 보지 못해서 이해를 못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대에서 다시 한번 작품을 접하니 스트리밍 불안정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야기 전개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다보니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젊어서 아이돌을 쫓아다니던 공무원이 갑자기 늙어서 나타나기도 하고 또 다시 젊어졌다가 늙는다. 마지막에 가서는 아네모네가 바닷가에서 만난 젊은 청년이 '당신은 내가 만든 연극의 등장인물일뿐이에요'라는 말을 아네모네에게 하는데 극안에 또 극이 있는 구조는 새롭지 않지만 본 작품의 내용이 난해해서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가 이해가지 않았다.

 

이야기를 이해하는 게 어려웠어서 작품을 한번(따지고 보면 한번이니) 본 것 가지고는 말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대신, 다양한 색의 조명이나 효과음,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이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등의 연출적인 센스가 참 좋아서 한편의 잔혹 동화 속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네모네가 딸이자 여자라는 것, 인간 여자의 몸으로 지상에 내려와 산 삶은 너무 비참하고 힘들었다는 것에서 유구한 역사 속의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고통을 떠올렸다. 극 중후반 즘에 아마도 동남아에서 온 것 같은 외국인들이 자가격리를 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앞서 나온 오타쿠 공무원이 여자 외국인에게 '너가 나의 꽈리고추쨩(아이돌이름)이 되어주면 이 곳에서 꺼내주겠다'고 말하는데, 동남아나 외국인 여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떠올라서 굉장히 불편했다. 워낙 아리송다리송한 극이라 페미니즘 극이라고 단정짓기도 모호하지만 아네모네의 상황이나 여자 캐릭터들이 하는 말들을 듣다보면 화려한 환상 속에서 갑자기 현실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아네모네를 그저 스스로를 신의 딸이라고 믿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 여자로 봤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네모네를 예수와 같은 신의 자녀로 봤을 것이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아네모네는 비참한 인간의 삶을 보았고 경험했으며 세상의 끝에서 꽃을 안고 먼 여행을 떠났다. 이게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몬 것인지 아니면 신의 막내딸로써 하늘로 돌아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네모네는 그저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이런 내가 있었다고, 이런 여자가 있었다고. 그렇게 저멀리 사라졌다.

 


이미지 출처: 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629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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