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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햄릿HAMLET』(국립극단 온라인시범극장, 20210225)

감상/공연

by mizu-umi 2021. 3. 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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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햄릿 캐스팅이 공개된 이후로 어떻게든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상연이 아예 취소되어 버려서 너무 슬펐다. 젠더 프리 캐스팅이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님들이 나오시니까 어떻게든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그런데, 마치 그런 사람들의 아쉬움을 안다는 듯 어느 날 국립극단이 온라인 상영을 하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극장에서 못본 공연 온라인으로라도 실컷 보자고, 신이 나서 2회차나 예매했다.

 


 

고전 작품이 으레 그렇듯 짧지 않은 러닝타임 속에서도 배우님들의 연기, 조명, 연출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지루할 틈 없이 볼 수 있었다. 물론, 아무래도 집에서 컴퓨터 켜놓고 보는 거라 온전히 집중해서 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의상이나 무대나 전체적으로 검정 계열의 색을 사용해서 세련되어 보였고 종종 등장하는 쨍한 색상들이 자칫 칙칙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잠시나마 살려주었다.

 

단 한가지, 치명적인 아쉬움이 남았다. 바로, 이 공연이 '젠더 프리'라는 타이틀을 걸고 화제를 모은 공연이란 사실이다.

 

공주 버전 햄릿을 공연할 것이라고 홍보해놓고는 왕자인 햄릿의 서사를 그대로 가져왔다는 사실에 매우 실망했다. 혹자는 그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원작이 있는 작품에 조금이라도 변주가 들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특별한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게 되는 건 비단 연극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세 덴마크의 왕자인 햄릿을 공주로 바꾼다면, 중세의 [공주]라는 위치에 걸맞은 서사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왕의 자식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여인이 복수의 화신이 되는 그런 서사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장면에서 클로디어스가 햄릿에게 내가 죽으면 너가 왕이 될 텐데 무슨 걱정이냐 말하는 장면부터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 극이 진행되면서 한번쯤은 햄릿의 공주로써의 위치가 햄릿의 비극을 극대화시키는 장면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전혀 없었다.

 

거트루드와 햄릿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거트루드는 자신이 클로디어스와 결혼하고 다시 한번 왕비의 자리에 앉은 건 햄릿을 보호하고 왕자리에 앉히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원작에서 별로 하는 게 없는 (?) 거트루드에게 어머니로써의 서사를 부여한 것은 좋았지만, 클로디어스가 '내가 죽으면 네가 왕자리를 물려받게 될 거다'라고 말한 시점에서 거트루드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게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거트루드가 클로디어스와 결혼한 이유가 햄릿을 보호하고 왕자리에 앉히기 위함이었다면 더더욱 공주인 햄릿이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게 드러나야 하지 않았을까?

 

햄릿 역의 이봉련 배우님도 햄릿을 공주가 아닌 왕자로 연기하고 계셔서 이 작품 속 햄릿은 공주가 아니라는 점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 인물에 부여된 서사가 탄탄하지 못해서 배우의 열연이 아까울 따름이었다.

 

한편, 중세 덴마크인 것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중적인 연극에 동성애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인 지는 모르겠지만 오필리어를 남자로 바꾸었는데, 배우님 본인이 오필리어를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신 티가 나서 좋았다. 원작의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오필리어를 남자로 볼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하지만,  햄릿이 오필리어한테 수녀원에나 가라고 하는 대사가 너무 이질적이었다. 원작 그대로 대사를 가져올 거면 '넌 남잔데 왜 그렇게 여자 같냐?'같은 비꼬는 대사 하나 넣고 수녀원 가라 했으면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데우스에 이어 햄릿을 보면서 든 생각. 한국 연극계는 젠더프리 젠더 프리 외쳐대지만 젠더 프리에 대한 이해나 진지한 공부는 전혀 안 하는 것 같다. 물론, 젠더 프리를 외치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4년이니 부족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우리가 공부를 안 했습니다, 신경을 안 썼습니다가 티 나게 만들어야 했나 싶다.

 

한편으로는 온라인으로 공개된 공연이 이 작품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관객들의 의견을 듣고 고쳐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게 안타깝다. 무대가 관객에게 보여지기 전까지는 제작진들만의 세상이라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국립극단 작품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잘 없다보니 크게 기대를 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 다시 한번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버전으로 무대가 올라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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